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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9일 월요일

보통 인간의 1,000년


  완벽한 깨닳음이란 없지만 어쩌면 많은 경험이란 것이 인생에 큰 의미를 차지하는듯 하다. 박진영의 노래 처럼 지금 그는 그 젊은 나이에 혹은 그 늦은 나이에 돈, 명예, 사랑 그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한다. 그걸 깨닳은 것이다. 누군가는 그 깨닳음을 일찍 겪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죽기 전에 겪을테지. 
똑같은 백년을 살아도 누군가는 보통사람의 천년의 인생을 사는 것이고, 누군가는 뛰어난 이의 10년의 인생을 살겠지. 결국은 유한한 존재의 인간에서 얼마만큼 농축된 삶을 사는가가 중요한듯하다. 

  완벽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혹은 신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다하는 것. 그래서 내가 내 자체를 아름답게 만들고, 주변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의미있는 삶 아닐까?

  그래서 나는 보다 농축된 삶을 살고 싶다. 농축된 삶을 살다가 수 많은 경험이 주는 스스로가 만든 원칙에 갖히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여, 유희적인 삶을 살고 싶다. 어린 아이의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가지고, 찻잔의 그 모서리처럼 유머를 가지고 노는 어린 어른으로 살아다가 죽고 싶다.


  내 안에 이 천년이 있다.

2013년 8월 27일 화요일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쓰기 전의 나와, 쓰고 있는 나와, 쓴 후의 나, 그리고 나중에 그 글을 본 내가 있다. 전과 아주 나중의 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걸까?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 것은 음식에서의 재료라고 말할 수 있고, 소스이다. 물리학에서의 전자와 입자, 양자 처럼 어떤 파동이고 에너지이다. 이런 것들이 글을 씀으로 인해 구체화되고 어떤 물질처럼의 모습을 띄게 된다. 그 전까지는 그냥 '무' 자체다. 따라서, 아는 것이 없고, 재료가 없다면 이 '무언가'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대상체도 없다. 문장도 없고, 문단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글을 쓴다는 것은 고뇌가 됐듯 기쁨이 되었든 그 '무언가'가 지금 분명코 존재한다는 것이다.
  글을 쓰기 전의 나는 이 무언가를 갖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리고 행위를 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책을 읽고 일을 한다. 그리고 생각들을 하고 사색에 잠긴다. 그 후에 나에겐 쓸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혹은 신에게 부여받은 자격이란 것이 생긴다고 여겨진다. 그렇게 준비된 글을 쓰게 될수 있게 된다.
  한참 글을 쓰면, 머릿속 정제되지 않은 어떤 뿌연것들이 하나의 모양이 되고, 하나의 단어와 문장들이 되고 문단이 되며 책이 되어감을 느낀다. 그렇게 마음껏 토해내고 나면, 비로소 쓴 내가 있게 된다. 
  쓴 나는 그 글을 다시 보지 않아도, 이미 쓰기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누군가가 나를 본다면, 아주 예리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아채지 못하리라. 그렇게 나는 점차 예술가가 되어 간다. 누군가의 말처럼, 하루 연습을 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하지 않으면 관객이 안다는 것처럼 그렇게 점차 다른 사람이 되어가면 사람들도 알게 된다. 나의 눈빛과 분위기에서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강가의 퇴적물처럼 내 스스로가 퇴적되어가고, 태풍과 큰 비로 인해 침식되어져 간다. 또 퇴적되고 어떤 한 강물의 줄기를 형성하게 된다. 내면의 나란 존재는 그런 것이다. 글이란 것은 그런 의미를 준다. 과거의 나의 글들이 지금의 내가 보면 참 가당키나 할까싶지만은 그때의 나는 그대로 의미가 있었고, 지금의 나 역시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쓰기전, 쓰는 중, 쓰고난 후, 한참 지난 후의 내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반복하면서, 또다른 내가 되어가고 성장과 진화를 거듭해 어느 순간 또 다른 폭풍을 만나 굳건히 벼랑 끝에 해안의 눈을 가지고 서 있을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다. 변화의 순간순간에 지금의 나 역시 있을수 밖에 없기에 모자라고 조바심나는 내가 여기 서있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것들이 저 높은 곳에서 보면 태풍의 눈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항상 태풍의 눈에 있거든.

매출 분석을 하다가....




       보이는가 이 숫자들의 향연이.

숫자들,, 내가 쌓아놓은 이 데이터베이스가 더더 차곡차곡 쌓여서, 신빙성 있는 자료들이 될테야.
이 춤추는 숫자들이 얼마나 재미있어. 더하고 더해야지. 다듬고 다듬어야지.

저 숫자들이 엄청난 콤마들을 달게 될꺼야. 
그 숫자들이 힘을 갖게 되겠지. 나에게나 우리에게 많은 힘이 될테야.
그러다가 정체되고, 다시 우린 호흡을 가다듬고, 보이지 않는 것에 우리를 걸테지.

분류별 매출에서 바닥을 찍는 것이 있다는 것은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그 곳이 정말 노다지 임을 의미하는 거지. 다른 것들을 유지 한채로 그 바닥을 끌어 올리면 돼. 그럼 더 재밌어질꺼야.
그러다가 그 분류들이 의미를 상실하는 날, 우리는 알을 깨고 밖으로 뛰쳐 나가서 세상으로 나들이 가야지. 니나노. ㅎㅎㅎ

2013년 8월 15일 목요일

하루 8시간 책을 읽고, 4시간 글을 쓴다.

  "집에 못간다면?"

  이 말은 나에게 많은 의미를 가진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고, 내가 하는 일들에서 해방됨을 의미한다. 모든 것. 진정 내가 가진 것 하나만을 가지고 나머지를 다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내가 가진 이 몸뚱이와 정신만을 가지고 나머지와 분리된다. 조금만 신이 나를 배려한다면 나의 마지막 의지처럼 가진 노트북 하나는 남겨주겠지.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도서관 옆에서 살아야지. 그리고 하루 종일 공짜 책만 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견하고도, 당연스러운 이 순간적인 생각이 내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돈이 없으니까 나는 도서관 옆에서 살고, 도서관에서 살것이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보고, 약간의 시간 동안 글을 쓰겠지. 그치만 뭘 위해서? 결국 다시 이 자리로 올 것이다. 사업을 하는 것. 즉, 나의 사람들과 하나의 비전과 꿈을 위해서, 살겠지. 세상 눈으로 본다면 돈을 버는것??
  5년 정도의 시간을 책 속에 파뭍혀서 식견을 넓히고, 나를 크게 키우고, 꿈을 더 키워서 그 움츠렸던 5년의 시간을, 5년 동안 일만 한 사람보다 더 빨리 보상받겠지. 그리고 다시 이 자리에…

  도서관의 책을 전부다 읽고, 나의 너덜해질 노트들과 꽉꽉 채워질 에버노트. 중요한 것은 이거야. 모든 것들이 사라지면 남을 어떤 것. 그 어떤 것이 내가 사는 이유다.

생각의 흐름

앉아서 적적하니 음악이나 귀에 꼽고, 생각을 한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냥 흐지부지 에버노트에 적어보아.
상념들과 아이디어, 생각들과 미래에 관한 것들을 떠오르는데로 끄적여봐. 그러면 좋은 것들이 남을 것들이 그물에 걸러지듯, 부피가 큰 것들이 체에 걸러지듯, 그렇게 내 안에 남을꺼야. 무거운 것들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들은 떠오르겠지. 

신경쓰게 하는 것들은 중요한 것들이 아니니 가볍게 떠오르게 내버려두고, 무거운 것들 이 중요한 것을을 주목하자. 가라앉은 돌들을 주워담아 요리조리 관찰해 봐. 분명 다른 어떤 것이 있을꺼야.

2013년 8월 11일 일요일

가장 기본 단위는 나.

  내가 우선 단단하고 스스로를 붙들어야 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듯, 스스로가 좋은 컨디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면의 흔들림을 가지고 주변을 아우를 수는 없는 법,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할터, 내 스스로가 선행되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남을 사랑할 수 없고, 나를 믿지 못하면서 남을 믿지 못한다. 나의 꿈이 없으면 나를 위해 살아달란 건 그저 연민이다. 내가 세운 목적지 없이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 역시 모순이며, 내가 짐을 지어보지도 않은채 나의 짐을 누군가에게 물려줄 수도 없다.
  나의 책임과 권한을 나누어줄 때는 그 둘을 균등하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거기에 동기와 이익 역시 균등하게 나누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단순히 내 생각이라기 보다는 그냥 이 우주와 세계가 돌아가는 어떤 가장 기본적인 부속 같은 느낌이다. 그 부속이 뭐라 말하기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없으면 안되는 것을 증명할수는 있는 느낌이랄까?
  기본에 충실해야 하며, 상식을 눈 여겨 봐야 한다. 원인과 결과는 정확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 것 없는 것은 요행이라 치부해도 무방하다.
  다만 나는 기회나 시대, 새로운 것,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모두가 눈으로 볼 수 있게끔 나의 사람들에게 들이 밀어야 한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나에겐 많이 부족하니까.

2013년 8월 10일 토요일

토해내

과거의 언젠가의 내가 그랬듯 지금 역시 익숙한 넬의 노래를 들으며 늘상 썼던 노트와 펜으로 글을 남겨. 인터넷과 에버노트, 수첩, 노트 등에 편파적으로 남겼던 나의 글들이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오히려 글을 쓰질 않네. 어떨때는 이게 옳다가도 어떨때는 저게 옳다. 책을 읽는 방법도 마찬가지야. 거의 쓸 때의 나만 있는걸? 그런 것 따위 신경쓰지 마. 그냥 토해내. 그럼 나는다른 내가 되어 있을테니까.

2013년 3월 21일 목요일

이 별의 삶..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 내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일을 하고 꿈을 위해 살며 늙어간다. 끝은 알 수 없고 한계가 없는 이 삶에서 한 조각 표지와 목적지 적힌 약간의 종이쪼가리를 들고 하루하루에 임한다. 경지에 오른 예술가들을 경외하고 내 삶의 조각도 선대의 그 경지, 예술의 경지에 이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인생은 예술이다. 내 영역과 내 업에서 잘하는 것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끌어올리는 것이 내 손에 들린 종이쪼가리다. 한계가 없는 이 별의 삶.. 돈과 일, 업적,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언리미티드를 벗어나는 나만의 삶. 미치지 않고, 이 별과 내가 아슬아슬하게 조우하는 인생. 모두가 가진 그 꿈들에서 볼 때, 내가 정신병자가 지껄이는 흩어지는 문장과 단어들이 아닌 미치지 않는 삶. 나만의 삶과 온전한 나의 인생에서 나 자신 스스로가 인정하는 종이쪼가리의 목표에서 온전히 벗어나서,,,,,, 그렇게 온전히 분리해서 발가벗은 나를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국엔 내가 주변을 다 먹어치우겠지. 내 옆과 앞과 뒤에 있는 모든 이들은 나로 인해 살아지고 나를 위해 살것이다. 결국엔 모든 이들, 일들이 그렇게 될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하며, 그래야 마땅하다.

  혼자 이렇게 동떨어져 있는 이 독보적 존재가 오늘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나를 지나치고 나를 알지 못하는 이 곳 주변 사람들의 눈엔 그냥 한 사람일테지만 진실과 진리와 조우하는 단 한사람인줄은 꿈에도 모를테지.. 무시하기엔 그 존재가 너무나 커서 내 스스로도 아찔하단 생각이 든다.

2013년 3월 12일 화요일

독보적 존재가 여기 있다.

  운명은 없다. 적어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결단하고 행동하고 행위하고 그에 수반되는  결과들이 신의 섭리일 뿐, 나에게 닥쳐온 일들이 운명일리 없다. 운명이라는 미명 아래 나를 더불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인생의 변명을 저질렀는가? 그 변명이 운명의 등뒤에 숨어서 수동적인 삶을 살아간다. 나도 너도, 지금 이 시점부터는 운명이란 걸 애시당초부터 생각하지 말자. 그 것의 존재도 없다라고 여기자. 우리는 삶을 개척하고 우리의 운명을 만들어 나간다. 결단, 행동, 결과들이 일어난 시점에,, 그 시점이 한참 지난 후에야 비로소 신의 섭리 비슷한 것을 어렴풋하게 이해할 뿐이다. 운명이라 생각하면, 얼마나 수동적으로 살아갈수 밖에 없나. 그 변명으로 우리는 마음의 위안을 얻지만, 그게 행복을 향한 길은 아닌걸,,,, 머리는 멍청해지고, 자극을 기다린다. 운명은 그런 것이다. 편하게 살자는 인간의 가장 좋지 않은 정신의 파트다. 
  삶과 나를 쟁취하자. 되도 않는 노력이 아닌, 열정과 행위에 기반하는 행동하는 삶을 살자. 뜨뜨미지근하게 살아가도 사는 것이고, 열정적이고 나를 불사르는 삶을 살아도 내가 살아가는 것이다. 어차피 사는 것은 똑같다. 죽을 때까지 마지못해 사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내 손위에 쥐어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나를 더불어 그들에게도 행동이 먼저인 영혼이 되게 만들자.
  인생의 수필에서 돋보기로 나는 철자 하나에 몰입했다. 그 철자 하나에 내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내 시간을 허비했다. 그 철자는 내 인생의 수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게 맞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 철자들이 모여서 한 권의 책을 이루지만 그 철자가 다는 아니다. 나는 돋보기로 피로한 눈을 가지고 그 철자들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중요하지만 결코 중요하지 않는 그 철자를…

  나는 독보적인 존재다. 여기 그 독보적인 존재가 고뇌하고 고민하고 걱정했었다. 나를 떠나서 내 위에서 날 바라본다. 부족하지만서도 가슴과 이상 속에 품고 있는 그 꿈의 크기와 신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그가 나는 참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내 주변 어디서도 그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고, 정말로 정말로 흔하지 않은 사람이다. 흔하지 않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특별한 존재다. 나는 나를 놓는다. 내 안에 흘러드는 사람들과 나를 통과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떠나는 사람들. 그 것은 그 사람들의 선택이었고, 그 사람들의 딱 그만큼의 복이다. 

  내가 나를 걸고 던지는 그 도박과 실험들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나를 위대한 영혼으로 가꾸어주었다. 나에게 다가오라. 그럼 내가 널 끌어안을 것이다. 나에게서 떠나고자 다짐하라. 그러면 그 전에 널 밀쳐주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고, 내 감정을 가지고 당신들에게 나의 도박을 던진다. 나는 나를 걸었다. 과연 당신들은 자신들을 나에게 걸었나?

  아랫배 저림의 삶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어. 지금 나는 역시나 아무도 없는 이 커피숍에서 사색과 생각을 한다. 일하다가 문득문득 생각에 빠지고, 간헐적 통찰이 나에게 다가온다. 이 나와의 대화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듯, 앞으로의 나 역시 그 퇴적된 것 만큼 모든이들과의 격차를 벌릴 것이다.
  내가 기억하기 시작한 그 3살때의 나 때부터 나는 이런 생각들을 했다. 엄청난 고통과 고뇌의 강들을 셀 수도 없이 건넜다. 자극에 목말라하는 사람들 사이로 나는 티비를 보지 않았고, 술을 마시지 않았다. 히히덕거리는 와중에서 느끼는 저렴한 소속감 따위도 외로움과 괴로움을 식량삼아 곱씹었다. 시덥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리더가 되어 마치 뭐라도 된 사람인양 행동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는 30년을 살았다. 이 엄청난 퇴적된 지층에서 나를 따를 순 없다. 나를 능가할 수도 없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 내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본적도 없고, 그런 존재를 느낄 수도 없었다.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사고, 시덥지않은 철학들을 내가 삼켰고 비웃었다. 나를 붙잡을 수 없으니, 포기하고 날 지켜봐라. 그리고 나와 함께 해라. 그게 내 성 안에 들어오는 길이다.

  내 머릿속에는 선반들이 있는데, 그 선반들 위에는 내가 읽었던 책들과 가봤던 곳, 맡았던 냄새, 만났던 사람들과 수많은 표본과 샘플들, 어떤 것에 대한 내가 반응한 경험, 생각들의 재료들과 수 많은 심상이 깃든 단어들, 음악들, 이루 말할 수 없는 색채들과 소음들… 이 모든 것들이 억겹의 거미줄처럼 얽혀져 있다.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고, 강철만큼 강하다. 30년 동안의 그 재료들을 가지고 살았고 그 선반들에 올려져 있는 것들과 얽혀져 있는 것들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

   

2013년 3월 7일 목요일

Immortality

불멸..

  영원한 것은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이 변함 없는 진리다. 그 강한 무쇠도 바닷바람 앞에서 오래지 않아 녹을 드러내고, 점차 사라져간다. 풍성하던 나무들도 낙엽으로 사라지고, 몇백년을 가는 나무도 그 수명이란게 있다. 내 머니클립의 돈은 오만원권, 만원권, 천원권,,,, 몇십장이 꽂혀있다 하더라도 그냥 나를 통과해 누군가에게로 흘러간다. 나와 함께 자라고 함께 일하고, 거래하던 수 많은 어제의 이들이 사라졌고, 오늘 또 새로 생겨났다. 사랑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내 안에 통과되었고, 또 다가온다…

  내 걸름망에 걸러진 것들… 내 계좌에 유지되는 잔액들,,, 무쇠처럼 변하긴 하지만, 더딘 것들…. 그 더딤… 천천히,,, 내 수명보다 긴 것들을 들여다보자. 어쩌면 우리 유한한 인간의 존재에서 그 더딘 것들이 오히려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그 더딤을 들여다보면,,,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것은 시간이 멈춰져 있는 것처럼 나에겐 마치 영원이 될 수 있는 착각을 안겨줄 수 있다. 내 손목에 채워져 있는 시계는 내가 죽더라도 몇백년은 가겠지. 내가 세운 회사는 내가 죽어도 이어져 가겠지. 내가 가진 땅들은 적어도 그 자리에 있겠지. 나보다 더 더디 변하는 그 어떤 마음은 내 곁에 영원처럼 날 지켜주겠지. 그래서 난 행복한 영원의 착각을 만끽하며 순수한 눈빛으로 세상에 놀러 나갈 수 있겠지.


  더디게 흘러가줘, 내 주변의 것들아. 내면의 나란 꼬마 아이가 엄마가 사라진걸 눈치채지 못하게,, 그 꼬마가 겁을 내지 않도록,, 소중히 다뤄줘. 엄마를 찾거든 엄마가 되어주고, 친구를 찾거든 소소한 친구가 되어줘. 맺힌 눈물 그대로 너에게 웃음을 지을테니까. 그 아이는 내게 너무나 소중해서, 난 어쩌지 못해. 근데 그게 나야. 그게 바로 나야.. 원래의 나였던 거야.

좋겠다..

외로움.
너넨 좋겠다. 그렇게 무지해도 같이 이야기할 친구가 있어서..

내 꿈과 비전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해. 동료와 동지가 필요하다.

삶이 정체되면 그때그때 변화를 주어야 한다.

  내가 사는 이 나의 삶이 정체되었다고 느낄 때, 그때 그때 변화를 주어야 한다. 삶을 바른 방향으로 갈수 있게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게끔 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먹고 자는 곳을 옮긴다거나 일어나는 시간 등의 패턴을 바꾼다거나 하는 행동으로 일상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똑같은 곳에서 자고 일어나고 먹고 일하고 하는 것보다 다른 곳에서 출퇴근하고, 전혀 다른 곳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하는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계속되는 이 일상의 패턴을 도미노처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
  사무실의 배치를 바꾸거나, 집안의 배치를 바꾸는 것도 효율성을 추구하는 행위이지만 사고의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다. 전혀 다른 공간과 제품들로 채우지는 않지만, 배치를 바꾸는 약간의 작업만으로도 내 사고는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마치 누군가의 생각의 방향을 전혀 다른 질문으로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처럼, 혹은 활동적인 운동을 함으로써 활동적인 생각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활발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사고를 활발하게 할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내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없이 누군가에게 믿음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내가 내년에 도달할 "  " 목표에 대한 확신도 없이, 누군가에게 내 목표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것을 준비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그래서 그 목표 달성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날 따르는 누군가가 완벽한 준비를 한다해도 내 스스로가 겁이 난다. 믿고 따르는 사람은 완벽한 준비를 향해 달려가는데, 그만큼의 일을 줄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그 순수한 눈망울을 보고 난 뭐라 말해야 하는가?

  사람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일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을 뜻하고, 더불어 그만큼의 매출과 이익이 받쳐줘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매출대비 이익이 상회하지 못하므로 스스로 망하는 것과 다름없다. 내 수중에 일을 그들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직업과 돈을 주고, 덤으로 파워와 사회적 위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어쨋건, 우리는 덩치를 키우고 돈을 회전시키고, 매출을 끌어올려야 하며,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 재무적으로 인사적으로 마케팅, 비전, 연구개발 복지 등의 밸런스를 유지시켜야 한다. 우리는 하나의 비전 아래 일한다. 우리를 불사르고 열정을 다해 일을 한다. 그것들을 제공하는 것은 나 자신이 되어야 하고, 이 밸런스들을 유지하는 것도 내 일이다. 파워의 소스가 내 스스로가 되어야 하며, 정보의 수렴구가 나 자신이어야 한다. 

  돈은 의미가 없다. 돈은 그저 기준이고, 어떤 척도이자 점수판일 뿐이다. 십년, 이십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를 생각하게 하자. 지금 버는 돈은 그 때의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고, 비교대상 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 돈은 사람에게든 회사에게든 모두 재투자한다. 선순환의 톱니바퀴에 맞물릴때까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재산과 자본, 회사와 사업장, 매장과 창고, ,,, 무엇보다 사람이 최고다.

2012년 12월 29일 토요일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갖는것은 통계로 낼 수 없는 경우의 수를 지나는 것이다. 이 엄청난 경우의 수를 지나서 한 사람의 마음을 얻게 되면, 그 사람은 내 사람이 된다. 일도 사랑도 마음을 얻는 일이다. 마음을 얻으면 일이든 사랑이든 그 다음은 마치 돈처럼 나를 따르게 된다. 온전히 따르게 된다는 것은 나를 준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 된다. 니체의 말처럼 내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순간 나도 괴물이 되는 것과 같다.
  리더의 곁에 있는 그들은 그가 섬기는 그 리더에게 모든걸 내어준다. 그 정신까지도.. 마찬가지로 리더 또한 그들에게 자신의 것을 내어줘야 한다. 그 밸런스가 없다면, 그 것은 그냥 돈으로 사람을 사는 것과 다름없다. 삶의 희망과 살아있다는 경험, 자아 실현 등 리더는 수많은 것들을 리더 주변의 사람들에게 내어준다. 회사를 짊어지고 어찌보면 무생물인 회사를 대변하고 일을 한다는 것은 반대로 개인이 할 수 없는 일과 파워를 행사하고, 개인으로는 할 수 없는 행위를 하고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회사를 위해 일하지만, 그만큼 회사는 그 사람에게 자부심을 안겨줄 수 있다. 
  회사는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곳이고, 스스로 생명력이 있다. 하나의 인격체처럼 여겨지고 행위하는데 건강한 회사는 각 개개인 구성원에 경험들을 제공한다. 비전과 목표를 향해 구성원들과 팀원들, 개개인들이 노력하고 성과를 내는데, 이는 어렸을 적 놀이의 연장선상이라 여겨진다. 더 복잡한 업무들을 처리하고, 돈이 개입되며 파워와 사회성이 적용되는 놀이다. 편을 짜서 서로를 이기려하는 경쟁심처럼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일을 통해 성과를 낸다. 더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더 잘하는 사람은 인정받는다. 사내 정치 등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혀지고 본질을 흐릴수 있을만큼 어렵게 보이는 이 관계들마저 우리는 어렸을 때 서로가 대장이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돈으로 사람을 살 수 있다. 그들의 마음을 얻은것처럼 느낄 수도 있고, 실제로 매수당한 사람도 그렇게 믿기도 한다. 역경과 고난이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100만원을 빌리기 보다 10억을 빌리기 쉽다. 왜냐하면 돈을 끌어당기기 시작하면 그만큼 새로운 돈을 끌어당기기도 쉽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사람을 끌어당기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수많은 사람을 끌어당기기는 오히려 쉬운 법이다. 한번 선순환하기 시작하면, 가속도가 붙어 그 선순환 사이클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사람을 끌어당기기 시작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고 내가 그들에게 내 마음을 내어주면, 돈과 성과는 따라오게 마련이다. 내가 그들의 장점과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그들은 나를 믿고 나의 비전과 나의 목표, 그리고 우리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돈과 성과는 따라올수 밖에 없다. 내가 할 일은 그들에게 지속적인 자극과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하는 일이다. 때에 따라 비전을 수정하고 목표를 다른 곳에 제시하는 일이 내 일이다. 같은 일을 더 잘하는 방법이라든지 새로운 시장개척 등은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고 충분한 동기부여만 된다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생존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내가 그들에게 세세한 것 까지 제시할 필요가 없어진다.
  마음을 얻게 되면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가질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이점을 가질 수 있다. 간섭과 제제의 양을 줄이면 비효율적인 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구성원들이 보다 긍정적인 곳에 에너지를 쓸 수 있다. 도덕적 헤이가 드나드는 계기를 자연히 줄일 수 있게 되며,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그리고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지만 그 목표와 비전이 등대처럼 우리를 비춘다. 그 등대를 보며 우리는 더 빠른 길을 찾게 될 것이며, 스스로의 자기계발을 더디하지 않게될 것이다.

  보다 깊은 심연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리더들과 경영자들(개개인 역시 스스로와 구성원들의 리더다.)은 복잡한 경영 환경 속에서 깊은 본질에 대해 아주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잠시 멈춰서서 자신에게 자문해보고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는 배려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매출 신장이 목표라고 하자. 우리는 수 많은 지표들과 데이터, 숫자들을 보고 현상황을 판단한다. 시장의 흐름과 기술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당장의 현장에서의 매출 상하한을 보고 어떤 계획을 수립할 수도 있다. 경쟁사의 동태를 살피거나, 내부에 어떤 적이 있는가도 살펴본다. 그렇다면 본질은 무엇인가?
  매출의 본질? 매출이 떨어졌다면 무언가 잘못된거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위에 말한 숫자가 줄어든것이나 경쟁사의 동태, 내부의 적 때문인가? 이들은 다 무엇에서 비롯된다는 말인가? 결국엔 사람이다. 소비자도 사람이고, 파는 사람도 사람이고, 제공하는 것도 사람이다. 관리자도 사람이고, 그 부하직원도 사람이다. 사람이 잘못된거다. 시장과 경쟁사, 트렌드 등 그 것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가시적인 상황일 뿐이다. 눈 앞에 드러나는 것들 말고, 깊은 내면은 결국에 사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사람은 무엇인가? 사람은 마음이다. 어떤 마음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시장과 경쟁사 트렌드에 의해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항상 해결 방법은 현장에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현장에 사람이 있다는 말인데, 우리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중에 하나는 책상 위에서 어떤 숫자와 지표들을 보고, 미래를 예측하며 수립하는 행위가 있다. 사람을 무시하고 사람의 마음을 무시해서 얻는 결과다. 
  요즘은 캐드의 발달로 실제 현장에 가지 않고도 주변의 환경 데이터 베이스와 건축물의 데이터만 입력하면 컴퓨터로 건물들을 실제로 지을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때문에 도면만 가지고 건축을 할 수 있고 이 때문에 많은 비용을 줄이고 위험과 청사진을 시뮬레이션 해볼수 있다. 백층 높이의 건물과 내부 인테리어까지 컴퓨터상에서 '건축'할 수 있는데, 건축물의 안전성까지도 시뮬레이션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다. 하지만 그에 따른 폐해가 적지 않은데, 실제 현장에서와의 괴리감이 그것이다. 현장에서는 숙련된 기술자들이 즉석으로 수정되는 부분들이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건축자재들의 날카로운 면이나 동선들을 컴퓨터가 고려하지 못한 나머지, 이 숙련된 기술자들이 얼기설기 고치는 부분들이 많다. 또 주변경관들을 고려하지 못해서, 창밖으로 어울리지 않는 경관들이 비추어진다던지, 컴퓨터로는 계산하지 못하는 것들을 지나치고 간과하게 된다. 실제 일을 해보면, 이와 유사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계획했던 것과의 차이 때문에 우리는 현장에서 많은 것을 수정한다.
  예상은 예상이다. 수 많은 경우의 수를 예상하고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물론 무척 중요하지만, 실제 현장은 그 예상과 시뮬레이션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뜻밖의 아이디어와 문제의 해결점이 현장의 사람들에서 나오기도 한다.
  따라서, 결국에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세상 모든 일들은 사람이 한다. 자연만이 신의 섭리로 돌아가는데, 그 마저도 사람들의 행위로 인해 영향을 받지 않는가?

  아이디어가 사업의 시작일수도 있지만,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것이 사람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고, 상도 임상옥의 말처럼 사람을 남기는 장사꾼이 되어야 한다. 이문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 
 
  생각해보라. 내가 마음을 얻고 나와 마음을 나눈 이들이 한가득 회사를 이루고, 우리가 한 비전과 목표를 향해 온 힘을 쏟아내며 정열을 바치고 아이디어를 쏟아내면 그 어떤 것이 우리를 가로막고 우리의 성과와 성공을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더 나아가 우리나라 국민들이 모두가 이렇게 서로에게 마음을 나누고 열심을 다해 자신의 일을 한다면, 우리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아,, 드라마는 보는 사람이 없어서 망하겠구나…. 모두가 열심히 자기를 발견하며 행복하게 사는데, 대리만족 따윈 필요 없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미니는 미니다.


  4년만에 타본 미니는 미니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맥북의 모양이 그대로듯, 그 디자인 그 느낌 그대로. 약간의 추가와 약간의 변화만이 그 자신만만하고 위풍당당한 디자인을 자신있게 내비치고 있었다. 어디에 주차를 하든 어느 차선을 변경 하던지간에 미니는 역시 미니. 어디에 놔도 어울리고 어디에 주차를 해도 합법적인 것 처럼 느껴진다. 이 것은 차를 떠나 어떤 아이콘이자, 영혼이 있는 존재를 대하는 기분이다. 한 회사의 마케팅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과정이자 엔드의 입장이다.

  나 역시 나와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 보다, 나에게 조금씩 조금씩 더 나은 어떤 것을 추가하고, 덧붙여서 나의 아이콘을 만들고 나만의 어떤 것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나의 강점이 되어서 나를 드러내는 개성이 되어야 한다.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내 자신감을 대변해야 한다.

2012년 12월 23일 일요일

나?

  나는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한다. 한 아버지의 아들이고, 삼십대 청년이다. 나는 렉서스를 타고, 랄프로렌 에프터쉐이브를 쓴다.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일하거나 커피한잔과 함께 무언가를 구상하고 생각하고 책을 읽는 등의 나름의 자기계발을 한다. 자기 전까지는 눕지 않고, 내 방에 들어가 무언가를 하지도 않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밖, 차, 사무실, 매장 에서 보낸다.
  질 좋은 제품을 선호하고, 관심이 없는 것은 매우 저렴한 것을 선호한다. 걸음은 빠르고, 거의 달리다시피 하며, 항상 머릿속에는 그 다음일을 생각하는 스스로가 만든 압력에 시달린다. 시간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며, 돈보다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매력적인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바보이며 우매하다고 여긴다. 주변 모든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충만하면서도 간섭하기는 싫어한다.
  내가 꾸는 꿈을 쫓아 살아가며, 내가 만든 이정표를 발견하며 어디만큼 왔나를 확인하는 것을 즐긴다. 스스로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돈을 모으고 저축을 해서 나에게 보상을 주지는 않는다. 타이트하게 사는 것을 즐기는 만큼이나 돈으로 나를 타이트하게 다루는 것을 끔찍히 싫어한다.
  취미가 일이되고, 일이 취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즐기면서도 감내 하는 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문제 해결이 결론적으로는 재미있는 것이지만 과정은 고통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몰입을 하는 동안은 나란 존재가 사라지지만, 몰입이 끝나는 그 시점에 나로 되돌아오고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모든 소유와 물건은 도구가 되어야 한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 심지어 돈까지도 도구가 되어야 마땅하다. 사람의 경우는 제외하자. 세상 모든 것들, 내 주변에 가득찬 모든 것들은 내게 도구가 되어야 한다. 도구를 넘어서서 목적이 된다면, 그 것은 참 슬픈 일이리라.

  혼자 있는 시간을 눈물을 흘리며 사랑한다. 내 사고의 스승이자 나를 높여주는 고독이란 친구는 항상 곁에서 날 일깨워주는 찬물 같은 존재다.

  강한 에프터 쉐이브를 좋아하며, 그 만큼이나 은은하게 나를 각인시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비언어적인 것들이 언어적인 것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주변보다 목소리가 영향력 있으며, 목소리보다 진심어린 눈빛과 진실의 속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나를 발견하고 나를 알아가고 나에 대해 설명하는 이 블로그의 나에 대한 프롤로그..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2012년 12월 21일 금요일

또 잊고 있는게 열정. 그것은 열정


  열정을 잊고 있었다. 항상 잊고 있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그 열정이란 알 수 없는 덩어리. 그 것은 만져지지도 않고, 볼 수도 없고 해서 마치 이 세상에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근데도 그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는데, 어떤 때는 가지고 있는 것 같고 또 어떤 때는 그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중요한 것은 그 것은 머릿속 하얘짐이고 내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더군다나 내가 그 열정을 가지고 열정 위에 있다하더라도 그 순간에는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열정을 갖는다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여겨지는데, 머릿속 하얘짐 그 순간을 지나고 휴식의 순간에 뒤 이어 보이지 않는 열정이란 놈의 끝자락을 손으로 흘려보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 내리는 모래들처럼, 흘러가버린 홍수의 물결처럼 느껴진다. 그런데도 나는 그 열정에 목매고 필요로 하고, 잊고 있다가도 엄마 잃은 아이처럼 울부짖는다.

  누군가가 나를 볼 때 열정을 느낀다해도 나에겐 그닥 중요한게 아니다. 열정에 올라서 있는 그 순간에도 중요한 것이 안다. 그 홍수가 지나고 난 후 어렴풋하게 느끼는 그 순간을 나는 목말라한다. 어떻게 하면 열정 선상에 날 항상 올려 놓을 수 있을까?

  인생을 내 삶을 흘러가는 대로 놓아두어서는 안된다. 내가 그 위에 올려야 하고, 계속하는 힘으로 인해 습관이 되고 그렇게 러너스 하이처럼 어느 순간 몰입의 폭포수에 내 온몸을 맞아야 한다. 그래서 내 삶을 조정해야 한다. 습관이 될 만큼 강렬하게 의식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그래서 그 의식의 끈이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올려보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선택은 내가 하고 내가 행동하지만, 결국에는 뒤이어 얻게 되는 열정이 나를 이끌게 된다. 지식으로 아는 것들이 날 아직도 방황하게 만드는 것은 계속하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계속해야 한다. 계속. 바위를 뚫는 물방을의 힘으로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 갖고 싶은게 있다. 그럼 갖고 싶은걸 가져라.

  갖고 싶은걸 가지지 아니하고, 합리적으로 효율적으로 생각해서 차선의 어떤 것을 선택한다면, 그것이 설령 가격적인 것에 메리트가 있다거나 훨씬 합리적인 결정이라 하더라도 결국엔 갖고 싶은 걸 갖지 못한데서 오는 후회를 피할 수 없다. 갖고 싶다는 느낌은 막연한 것과 비슷하다.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그 어떤 대책이 떠오르고 결정되는 과정 이전에 등장하는 감정상태다. 쉽고 간단하게 말해서 갖고 싶은 것은 내 마음의 원초적인 꾸밈없는 어떤 것이 그 것을 갖고 싶다는 것이다. 이 것은 마치, 어떤 일이 좋아서 하는 것과 마지못해 해야 해서 하는 것과 같은 비교의 맥락이다. 막연히 좋다라는 것은 내 과거와 역사가 그 곳에 숨겨져 있다. 그래서 이유야 어찌되었든 나는 실제로 그것을 하길 원하고 갖고 싶길 원한다. 이유는 그 다음이다. 그리고 합리적인 생각이 등장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 속에서 속삭이는 것들에 내가 솔찍해질 수 있다. 그렇게 선순환의 과정을 갖게 될 수 있다.


  갖고 싶은 것을 갖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 것들에 대한 감정에 솔찍히 대응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 간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결국엔 결과론적으로 그 과정이 훨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결정 과정이 되는 아이러니한 감정을 겪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의 감정흐름을 어찌보면 거의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다. 원하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하고 싶은 일이든, 사업, 미래, 환경 등 내 주변의 모든 것들에 적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 마음속 속삭임에 귀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적용할 것들에 대한 경중만 다를 뿐 본질은 똑같다. 결국엔 내 마음의 문제다.


이렇게 오늘 아침에도 나는 세상에 옳고 그름은 없다는 것에 다시 한번 깨닫고 화장실에서 소스라친다.


옳고 그름은 없다. 내가 옳다고 믿다면 옳은 것이고, 내가 틀리다고 믿는다면 그 것은 그른 것이다.


내 마음은 오늘도 나에게 속삭인다.



일을 즐겨야 한다.



  머릿속에 온통 일 생각만이 가득하고,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건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것이 중요하다. 무슨 모임이 중요하고, 참석하고 이런 류의 문제가 아니라, 일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점수판의 점수를 올리고 계좌에 높은 점수를 찍는 것으로 지금이 어떤 상황이고 얼마만큼 왔는지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즐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식으로 나를 몰아세워야 하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내가 지금의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나를 더 밀어 넣을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점수판을 잘 파악해야 한다. 마진율을 계산하고 정보를 내 쪽으로 수렴해야 한다. 그런 것들이 선행된 다음 또 어떤 것들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또 어떤 것들이란 예를 들면, 새로운 사업이나 새로운 돈 벌이, 혹은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장소와 그 어떤 것들이어야 한다. 새로운 차가, 새로운 컴퓨터와, 새로운 그 어떤 물건이 아니라,,, 지금의 영업 영역과 연계되고 점수판과 상관이 있는 그 어떤 것이어야 한다. 물건과 소유는 나를 움직일 수 없다. 그 것들은 그저 삶의 윤활유 같은 것이고, 더 효율적으로 살기 위한 도구이고 필요의 것이다.

  목적은 과정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몰입과 머릿속 하얘짐, 아랫배의 저림을 나는 항상 가져야 한다. 그 것이 없는 삶은 근본 없고 재미 없는 삶이다. 과정, 그 프로세스에 날 올려야 한다. 프로세스와 목적, 목표, 그 모든 것들의 밸런스를 유지해야 내 삶은 보다 건강해 질 수 있다. 재미있는 과정만 있고 점수판의 점수를 올리지 못한다거나, 똑같은 반복된 프로세스로 몰입을 할 수 없다거나, 목표를 잃고 원하는 내 모습과 가지고 싶은 것들을 못가진다거나, 도구가 목적이 되어 버린다거나 하는 것은 스스로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밸런스가 어느 한 곳으로 치우쳐지거나 무너진다면 행복으로 나를 수렴시킬 수 없다. 밸런스라는 것이 어느 순간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수 있지만, 유동적으로 그 시소를 유지 시킬수 있어야 한다. 고정관념으로 인해 내가 딱딱해져서는 안된다. 밸런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으니까…


2012년 12월 19일 수요일

독서


책은 응집력이다.

삶과 역사, 문명을 짜내어 만든 한 방울의 엑기스이다.

이런 엑기스 없이 산다는 것은 무지의 끝자락에서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