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4일 화요일

습관이란 타력

습관에 의해 하루가 간다. 습관을 재조정해야겠다. 읽고, 쓰고, 상상하고 기억해내고 흘려보내고,,, 더 많이 읽고 쓴다. 내간 한 질문들에 대해 대답을 한다. 쏟아내고 양을 만들어낸다. 최초의 장치를 만든다. 재조정한다. 계속해서. 블로그도 좋다. 계속한다. 그러면서 궤도를 수정한다. 사업을 한다. 그러면서 궤도를 수정한다.

2016년 7월 20일 수요일

나주호

  미지근한 바람이 해풍처럼 불면 기분 좋은 시원함으로 느껴져. 호수가 펼쳐진 집에서 4일째 되는 날 느즈막한
오후 4시
의 바람.. 세상 모든 시간을 가진 듯한 느낌에 그 바람이 불면 눈을 감고 귀뒤로 흘러가는 바람을 한올 한올 느껴야지. 보이는 곳에 세워진 포르쉐는 항상 떠날 수 있는 정신의 반영이 되겠지. 그리고 석양색 대쉬보드는 돌아올 곳이 있다는 정신의 반영이 될 것이고,, 어둠이 찾아오면 친구들이 찾아온다. 일상 속에서 왁자지껄한 세상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고, 서로의 시간을 갖겠지. 그리고 ㄷ자 집의 한 가운데 정원에 모여 커피를 한잔 해야지. 
  여름의 향기가 이리도 좋다. 초록은 더 초록으로 보이고 향기는 그 향기가 더 깊어지지. 허리가 잘려나간 잔디의 잔인한 풀내음 조차도 생생하잖아.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책상에 머리 처박고 있기엔 삶이 너무 짧다. 순간순간 가만히 앉아 있는다. 아이폰의 빈약한 스피커든 보스 스피커든 차에서의 OEM 스피커든 갑자기 집중해서 음악을 듣는 행위를 한다. 최대한대로 집중해서 악기 하나하나가 구분될수 있을 정도의 귀를 연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이 들고나서 주변을 돌아보면 다시 그 환경은 날 압도해 생생하게. 초록이 더 초록으로 보이고, 향기는 더 깊어진다. 공기를 갈라서 세세하게 느끼면 흐르는 공기와 냄새를 품은 공기, 돌아나가는 공기를 느낄 수 있다. 내 솜털을 켜켜이 넘어가는 공기도 있고, 텁텁하게 머무는 옷과 피부 사이의 공기도 있다. 느낄 수 있는 내가 정말 사랑스럽기도 하지. 

  기꺼이 자폐아처럼 세상을 느끼려 

2016년 7월 8일 금요일

살아 있다는 것이 고민이다_2016.7.8

  살아있다는 것이 고민이다. 삶이 풀려나가는게 묶인 실타래도 아닌데 언제까지 풀어야 하나. 삶은 일자 시소가 아니다. 시소들의 얽혀짐인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것 하나가 해결되거나 가라앉으면 어느것 하나가 발생하고 솟아오른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어떤 패턴이 있는 듯 하다. 우리가 집중하고 신경 쓸 수 있는 문제 자체는 거대한 한 가지에 압도되는 것은 아닐까? 다른 것에 대한 시선이 닫히고 현재 가장 마음 쓰이는 문제 혹은 생존을 위협하는 등의 위기 따위에 집중한다. 그래서 하나가 해결되면 다른게 문제가 생긴다고 착각하는지도. 문제는 그냥 존재하는데 내가 달라진거지. 살만하면 별일이 생긴다. 생존의 위기 속에서는 별것도 아닐것들. 죽는다면 아무것도 아닐 것들, 고통이 없으니 고통을 찾아 떠나는 것인지도. 혹은 롤러코스터처럼 안전한 죽음을 경험하고 싶은 것인지도.
  아직은 살만하니까. 역사속에 검댕이 얼굴을 한 굶주림에 시달리는 수많은 위인들. 그들이 지금을 산다면 저마다 풍요속에서 빈곤을 살며 감정들을 소비하겠지. 그래서 무지가 행복인지도, 나는 무지보다 앎이 좋다. 그래서 후유증으로 고생하지만 어쩌겠나.



  이 살아있다는 것이 고민이라는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삶은 고통이고 사랑은 아픔이다. 이 점들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해야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온전히 배우고 느끼며 경험할 수 있다. 환희는 터널의 끝에서 빛나는 법이니. 초장부터 쫄지 마라. 

2016년 7월 6일 수요일

소년의 얼굴이 나에게 말을 했다_2016.7.6

  소년의 얼굴이 나에게 말을 했다.


  씻고 나와 티셔츠를 입으며 거울을 봤는데, 거울의 소년이 내게 말했다. 현재의 이 즐거운 시간에 대해 온전히 함께 하자고. 미소를 짓는다. 나를 사랑한다. 어떤 모습이 되던 간에 거울속 소년은 나와 함께 죽음을 맞이해줄테니까.

  어떠한 계기로 인해 잊고 있던걸 다시 또 되찾았다. 삶의 철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해야 함을 기억해라."이다. 이 말만을 믿고 여지껏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정보와 앎, 심지어 개인의 철학까지도 외부화가 가능하다.
  "어린아이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살다 죽겠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하다못해 길가의 가로수, 돌맹이 하나까지도 누군가가 갖다놓았더라. 우리 사람이 관여된 모든 것들에는 인과관계가 깔려 있다. 신의 섭리로 이루어진 자연은 논외로 치더라도...
  매력적인 사람들에 의해 내 마음의 빗장이 풀린다. 풀린 빗장으로 쏟아져나오는 것들은 형형색색으로 포장되어 있지. 그 포장을 뜯는 재미만으로도 몇일이 걸리겠지. 그 내용물은 또 어때. 그것들 하나하나를 가지고 노는 것만으로도 몇일이 걸리는데, 중요한건 그것들이 또다른 그것들을 불러낸다는 것이다. 꼬리가 꼬리를 물고 죽음에 이르겠지만,,, 그렇기에 더 아름다운 거겠지.

  끝이 보인다는 것'', 내겐 죽음이 보인다. 진정한 끝은 죽음이지. 이것의 끝, 저것의 끝은 사실 표면에 달라붙은 먼지 같은 것. 그것의 본질은 죽음, 상실, 사라짐이다. 그러니 노인처럼 굴지 말자. 어차피 죽음은 닥달해도 오고 밀어도 온다. 
  요즘 수많은 심상들이 내게 찾아온다. 수많은 아이디어들이라고 고쳐써도 좋다. 머릿속 밀쳐내는 생각들에 입가에 미소와 흥얼거림으로 화답한다. 정말 신난다. 이런 창조적 파괴에 감사하다. 나를 무너트리고 뒤흔들었다. 그 균열 속에서 나는 죽음을 보고 전쟁을 겪는다. 싄난다.
  더 많은 매력적인 영혼들을 만나봐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왜 나는 잊고 있었나? 너무 삶을 사업적 궤도로만 바라보았나? 삶 자체가 사업이 되는게 맞는데, 사업이 삶에 되게하고선 선을 긋고 젠체했나보다.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왜 깜빡했나? 더 좋은 어떤것,, 푸르른 영혼을 마주쳐보고 싶다.

  나를 던지는 나를 사랑한다. 허풍이 아닌 직선으로 걸어가 스스로에게 뒤를 돌아보지 않게 하고, 너무 먼 곳을 바라보지 않게 한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지금 내 앞의 당신을 바라보며, 나를 던진다. 그게 나는 재밌고 유쾌하고 행복하다. 견딜수 없을정도의 간지러움이 내 몸을 타고돈다. 상처를 받는건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60억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횡령해도 견딜수 있는 회사를 만든다. 상처는 중요하지 않아. 그것을 견뎌낼수 있는 내가 중요한거지. 그러니 난도질당해 너덜해져도 괜찮아. 더 강해지니까.



2016년 7월 3일 일요일

2016.7.3. Am 3:03

#아름다운 인생이다. 오늘도. 탄탄한 피부와 사람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 자신의 삶에 감사하다. 찬란한 사랑이든 가슴아픈 사랑이든 삶이란 공간을 가득 채우는 현재라는 선물. 항상 내 귓싸대기를 후려치는 실감 앞에 또 환희의 눈물을 흘려.. 고맙고 고맙다. 살아있음에..

#니가 보고싶어서 자꾸만 생각나서 한참을 멈춰서서 서성거린다. 아닌걸 알면서도 계속 미련이 남고 붙잡고 싶어져서 자꾸 눈물이 나.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했어. 내 전부가 될 줄은 몰랐어. 이렇게까지 너의 그 미소가 간절해질거란걸 몰랐어. 너를 꼭 지켜내고 싶어.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했어. 내 전부가 될줄 몰랐어. 이렇게까지 너의 목소리가 간절해질거란걸 몰랐어. 너를 꼭 지켜내고 싶어. 니가 보고싶어서 자꾸만 생각나서 붙잡고 싶어져서 서성거린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달라질 건 없지만 난 같은 자리에서 늘 기다린다. 난 널 기다린다.

#시리도록 슬픈 감정도 밀려드는 환희도 모두 다 좋다. 이 비를 맞는 것이 좋다. 

#타고난 감수성을 탓해 무엇하랴. 그러니 그 나락들을 즐겨. 나는 온전히 나니까. 모든 것들은 흘러간다.

#진실은 늘 무기력해 모래처럼 부서지고 파도처럼 부서져버려.



2016년 6월 27일 월요일

하고싶은게 있다._2012.9.12

모든 이유가 있는 법. 변명을 하려고 하면 끝이 없다. 변명을 하지 말자.






여기, 하고싶은게 있다. 이 것을 안하면 후회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럼 한다.


마음 속에 한마리 벌레가 살고 있는데, 그 벌레는 죽었다가도 살아났다가 또 죽는다. 그리고 다시 살아난다. 무언가를 원하는데 그 것을 못하게 자꾸 막는다. 스스로의 합리화라는 독을 내 뿜으며 지금 당장의 심적 긴장완화라는 중독성 있는 독을 내 뿜는다. 결국엔 그 중독된 독에 나 스스로의 반란을 꾀하겠지.

쉽게 얘기해서 변명을 하면 끝이 없다. 변명을 하자면 어떠한 이유든지 찾아낼 수 있고, 나를 설득할 수 있다. 변명의 힘은 그런것이다. 나를 설득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어떤 이도 설득할 수 없는 나를 그 변명이란 놈은 쉽게도 설득할 수 있다. 챙피함, 무기력함, 연기, 부끄러움,,, 모든 감정들과 이유들을 동원해서 나를 설득한다. 그리고 나는 그 아래 무릎 꿇는다. 만일 내가 더이상은 이렇게 못살겠어라는 생각을 한다면,,, 적어도 그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 변명이란 놈 앞에 무릎 꿇고 질질 끌려다닌다. 

  문제는 타이밍인데, 언젠가 그 다짐을 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 타이밍이 언제인지가 중요하다. 이건 마치 반드시 해야할 일을 저 멀리 놓아두고 잊을만하면 내 사고가 그 곳을 향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언제인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되도록이면 빨리 하는 것이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쓸데 없는 소비를 막을 수 있다. 인간의 역사와 수명은 한정적이니까..

  가능한한 빨리, 되도록이면 그 즉시 하는게 거의 모든 면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월등히 낫다. 만약, 변명을 하지 않고, 마음이 시키는 그 길로 가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어서 고민의 시간마저 줄이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습관으로 가지게 된다면 얼마나 담백한 삶이 될까?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에 솔찍해지는 길인 이 습관은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나의 인생에 안겨줄 수 있을까?



2016년 6월 26일 일요일

나는 깨닫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닳았다._2015.12.20

 # 나는 깨닫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닳았다. 
#여기 내가 오늘 깨닳은게 있어. 매일 매일 그런 말을 하고 싶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만나면 오늘 재미난 일에 대해 설명하는 것처럼. 나는 깨닫는게 가장 신난다. 나에게 가장 신나는 일은 깨닫는 것이다. 내일도 말하고 싶다. "오늘 깨닳은게 뭐냐면~"


  ##단순한 골프에서조차 깨닳음을 얻는다. 그리고 그 외의 것들에 서서히 물들어가고 퍼져 나간다. 사업에 개인에 주변에 말이다. 유추를 통해 전혀 다른 분야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적용한다. 그리고 은유한다. 오늘 일의 그 너머의 깨닳음은 내가 깨닫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닳았다. 깨닳음에 이르기까지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까지 지루함과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멈춰서도 안되고 단순히 밀어붙혀서도 안된다. 적절한 정신의 탄력과 실행이 겸비되어야 하며 이론 또한 더해져야 한다.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하고, 때론 다른 사람의 도움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결국 그 깨닳음을 얻는 것은 본인에 의해서만이 된다. 그래서 도움을 얻었다 해도 부끄러울 일이 아니고, 상대방이 우쭐해할 일도 아니다. 그 것을 온전히 깨닫는 것은 당사자 본인 스스로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지혜로운 이에게 의지한다면 그것은 깨닳음이 아니고 정보다. 정보는 깨닳음이 아니다.

  하루하루가 깨닳음의 연속이다. 깨닫는다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무지하다는 것을 좋아하다는 것과 결론을 같이 한다. 깨닳기 전의 나와 깨닳은 후의 나. 하나의 진리와 사실, 사물의 이치 등을 깨닫는다는 것은 그 것을 몰랐었던 때의 내가 있다는 의미이고, 앎이라는 깨닳음을 얻었다면 그 후의 또 어떤 깨닳음이 있다는 말인데, 진실은 나를 포함한 우리 인간은 온전한 깨닳음을 얻을 수 없다. 세상의 패턴과 진리를 알수 있다손 치더라도 모든 것을 앎에 담을 수는 없다. 따라서 나의 무지를 확인하는 길이 나의 깨닳음을 확인하는 길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