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6일 일요일

나는 깨닫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닳았다._2015.12.20

 # 나는 깨닫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닳았다. 
#여기 내가 오늘 깨닳은게 있어. 매일 매일 그런 말을 하고 싶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만나면 오늘 재미난 일에 대해 설명하는 것처럼. 나는 깨닫는게 가장 신난다. 나에게 가장 신나는 일은 깨닫는 것이다. 내일도 말하고 싶다. "오늘 깨닳은게 뭐냐면~"


  ##단순한 골프에서조차 깨닳음을 얻는다. 그리고 그 외의 것들에 서서히 물들어가고 퍼져 나간다. 사업에 개인에 주변에 말이다. 유추를 통해 전혀 다른 분야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적용한다. 그리고 은유한다. 오늘 일의 그 너머의 깨닳음은 내가 깨닫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닳았다. 깨닳음에 이르기까지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까지 지루함과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멈춰서도 안되고 단순히 밀어붙혀서도 안된다. 적절한 정신의 탄력과 실행이 겸비되어야 하며 이론 또한 더해져야 한다.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하고, 때론 다른 사람의 도움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결국 그 깨닳음을 얻는 것은 본인에 의해서만이 된다. 그래서 도움을 얻었다 해도 부끄러울 일이 아니고, 상대방이 우쭐해할 일도 아니다. 그 것을 온전히 깨닫는 것은 당사자 본인 스스로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지혜로운 이에게 의지한다면 그것은 깨닳음이 아니고 정보다. 정보는 깨닳음이 아니다.

  하루하루가 깨닳음의 연속이다. 깨닫는다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무지하다는 것을 좋아하다는 것과 결론을 같이 한다. 깨닳기 전의 나와 깨닳은 후의 나. 하나의 진리와 사실, 사물의 이치 등을 깨닫는다는 것은 그 것을 몰랐었던 때의 내가 있다는 의미이고, 앎이라는 깨닳음을 얻었다면 그 후의 또 어떤 깨닳음이 있다는 말인데, 진실은 나를 포함한 우리 인간은 온전한 깨닳음을 얻을 수 없다. 세상의 패턴과 진리를 알수 있다손 치더라도 모든 것을 앎에 담을 수는 없다. 따라서 나의 무지를 확인하는 길이 나의 깨닳음을 확인하는 길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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