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7일 화요일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쓰기 전의 나와, 쓰고 있는 나와, 쓴 후의 나, 그리고 나중에 그 글을 본 내가 있다. 전과 아주 나중의 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걸까?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 것은 음식에서의 재료라고 말할 수 있고, 소스이다. 물리학에서의 전자와 입자, 양자 처럼 어떤 파동이고 에너지이다. 이런 것들이 글을 씀으로 인해 구체화되고 어떤 물질처럼의 모습을 띄게 된다. 그 전까지는 그냥 '무' 자체다. 따라서, 아는 것이 없고, 재료가 없다면 이 '무언가'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대상체도 없다. 문장도 없고, 문단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글을 쓴다는 것은 고뇌가 됐듯 기쁨이 되었든 그 '무언가'가 지금 분명코 존재한다는 것이다.
  글을 쓰기 전의 나는 이 무언가를 갖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리고 행위를 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책을 읽고 일을 한다. 그리고 생각들을 하고 사색에 잠긴다. 그 후에 나에겐 쓸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혹은 신에게 부여받은 자격이란 것이 생긴다고 여겨진다. 그렇게 준비된 글을 쓰게 될수 있게 된다.
  한참 글을 쓰면, 머릿속 정제되지 않은 어떤 뿌연것들이 하나의 모양이 되고, 하나의 단어와 문장들이 되고 문단이 되며 책이 되어감을 느낀다. 그렇게 마음껏 토해내고 나면, 비로소 쓴 내가 있게 된다. 
  쓴 나는 그 글을 다시 보지 않아도, 이미 쓰기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누군가가 나를 본다면, 아주 예리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아채지 못하리라. 그렇게 나는 점차 예술가가 되어 간다. 누군가의 말처럼, 하루 연습을 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하지 않으면 관객이 안다는 것처럼 그렇게 점차 다른 사람이 되어가면 사람들도 알게 된다. 나의 눈빛과 분위기에서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강가의 퇴적물처럼 내 스스로가 퇴적되어가고, 태풍과 큰 비로 인해 침식되어져 간다. 또 퇴적되고 어떤 한 강물의 줄기를 형성하게 된다. 내면의 나란 존재는 그런 것이다. 글이란 것은 그런 의미를 준다. 과거의 나의 글들이 지금의 내가 보면 참 가당키나 할까싶지만은 그때의 나는 그대로 의미가 있었고, 지금의 나 역시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쓰기전, 쓰는 중, 쓰고난 후, 한참 지난 후의 내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반복하면서, 또다른 내가 되어가고 성장과 진화를 거듭해 어느 순간 또 다른 폭풍을 만나 굳건히 벼랑 끝에 해안의 눈을 가지고 서 있을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다. 변화의 순간순간에 지금의 나 역시 있을수 밖에 없기에 모자라고 조바심나는 내가 여기 서있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것들이 저 높은 곳에서 보면 태풍의 눈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항상 태풍의 눈에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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